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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 시민이 주도해야 성공한다
profile_image 사무국21-05-04 09:44

에너지정의행동 회원들이 4월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체르노빌 핵발전 참사 35주기를 맞아 탈핵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핵발전 중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 위기]기후위기 제대로 대응하려면
"정부, 대기업에 주도권 넘기면 안돼"

그린뉴딜, 탄소중립 흥행 저조
"시민의 역할이 빠졌기 때문"

소득, 자산 수준과 기후위기 책임 비례
탄소배출 더 줄이는 정책은
약자의 고통 더 커질 것
"민주적, 계획적 전환 반드시 필요"

30일 사회적경제 정책포럼에서
기후위기 관련 다양한 의견 나와

기후위기는 시급성과 중요도에 비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던 의제였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수준이 사람들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의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구 온도 상승폭을 기존 2.0℃에서 1.5℃로 줄이려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2018년에 발표했지만, 세계 2위 탄소배출국인 미국은 같은 해에 오히려 탄소배출 규제를 완화했고, 감소세였던 미국의 탄소배출량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8년 당시 15살이었던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이끈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등교거부’ 운동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지난해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의 전세계적 확산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례였다. 지난 1월21일엔 취임 첫날을 맞이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첫 행정명령으로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할 것을 지시했고, 지난달 22일엔 40개국 정상을 화상으로 초청해 기후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최근 전세계 산업계에서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최근의 기후 의제의 대두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기후 의제가 주목을 받으면서 이 문제를 다루는 주체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이 특정 이해관계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각국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구도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협동조합과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의 역할이 요구된다. 지난달 30일 서울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기후위기 시대, 시민 중심 거버넌스를 위한 사회적 경제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린 제15회 사회적경제 정책포럼은 사회적 경제와 시민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포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전국네트워크,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가 공동 주관했고, 사회적기업 행복나래가 후원했다.

 프랑스와 영국, 기후시민의회를 통해 공론화

이날 기조발제자로 나선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데 있어 성공의 열쇠로 ‘시민 주도성’(시민 중심 거버넌스)을 꼽았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을 두 갈래로 나눠 ‘자본의 길’과 ‘시민의 길’을 구분했다. 그는 자본의 길이 지닌 한계부터 제시했다. 자본이 신재생에너지 발전, 배터리, 전기차와 수소연료 등의 산업적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이를 상품화하고 있지만, 이들 상품을 소비할 만한 경제적 여유를 지닌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시민들이 기존과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와 생활방식을 유지한 상태로는 기후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한국의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정책이 왜 흥행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정부와 대기업이 만든 이 정책엔 시민들의 역할이 빠져 있다. 이런 정책으론 시민들의 관심도 지지도 이끌어내기 어렵고, 이런 식으로 그린뉴딜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탄소중립은 시민이 주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며 미국 조 바이든 정부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가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등에 도입된 기후시민의회, 미국 뉴욕주의 주민들이 참여한 ‘기후행동위원회’ 등이다. 프랑스의 기후시민의회는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며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한 대응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해 만들어진 기구다. 성별, 나이, 지역 등 인구 대표성을 반영한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150명의 시민 의원들은 2019년 10월부터 9개월 동안 활동하며 149개 권고안이 담긴 460쪽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프랑스 기후행동네트워크는 지난해 6월 프랑스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70% 이상이 기후시민의회의 제안을 알고 있고, 이들 대부분이 시민의회의 활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오 이사는 “미국 뉴욕주도 2019년 기후리더십과 공동체 보호법이 통과됐고, 이 법의 집행을 주정부가 아닌 기후행동위원회라는 시민 참여의 독립 거버넌스가 맡고 있다”며 “바이든 정부가 지난 4월에 발표한 2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에서 40%를 기후 피해자를 위한 투자에 배정한 배경에도 시민 주도 거버넌스의 역할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기후시민의회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이날 토론자로 나선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은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하 소장은 “신고리 5, 6호기 폐쇄 결정과 관련해 적용된 공론화위원회를 살펴보면 시민들이 참여해 의견을 만드는 ‘숙의 모델’이었지, 인식을 확산시키는 ‘여론형성 모델’이 아니었다”며 시민의회를 통한 기후위기 인식 제고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시민의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후 불평등에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하지만, 그런 구성으로 의회를 만들기가 어렵다”, “시민의회가 가지는 권한이 권고 수준에 그친다면 관료 조직이 내리는 정책 결정을 정당화해 주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탄소 배출하며 성장한 경제, 근본적인 성찰 필요”

두번째 발제에 나선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은 현시대의 경제 체제가 지닌 근본적인 한계부터 지적했다. 김 소장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사회나 기후 또는 지구를 생각하며 경제정책을 짜지 않는다. 경제학은 사회도, 자연도, 지구도 모두 ‘외부’라는 표현을 쓰며 그것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려 했다”며 그 결과로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경제 체제가 탄소 배출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우리는 흔히 산업혁명이 증기기관과 같은 기술혁신에서 비롯됐고, 대규모 노동자가 공유지에서 쫓겨나 임노동을 하면서 가속화됐다고 생각하지만, 석탄이라는 화석연료를 집중적으로 사용했기 떄문에 산업혁명이 가능했다는 것을 종종 잊곤 한다”며 “인류의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화석연료 사용이 지구가 그동안 유지한 탄소순환이 깨지게 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기후위기의 책임자들도 정면으로 지목했다. 그는 “지금의 기후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꾸준히 탄소가 배출된 결과가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살아 있는 우리 세대가 사는 동안 탄소 배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라며 “인구와 경제 규모, 에너지 소비 등의 지표가 1950년대 이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현재까지 온도가 1.1도 올랐다고 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1950년대 이후 올랐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여러 조사 연구에 의하면 전세계 소득과 자산 분포에 비례해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정부가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 에너지 전환을 하자는 ‘녹색투자’와 성장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자는 ‘탈성장 담론’이 어우러져서 ‘그린뉴딜’이 제시되고 있고, 이 뉴딜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선 “지역 공동체와 시민사회, 사회적 경제 부문이 지방정부의 정책 실행 과정에 거버넌스로 참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이 에너지 전환을 하는 데 가장 큰 난관은 기술도 재원도 아닌 민원일 것”이라며 지역 공동체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정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독일, 덴마크 등 이미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인 국가에서 먼저 실행된, 지역 주민과 이익을 공유하고 협동조합 등이 에너지 전환 주체로 참여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민주주의란

세번째 발제자인 한재각 멸종저항서울 활동가는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가 속한 멸종저항은 기후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급진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로 2019년에 영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기후위기는 미래 세대 혹은 먼 나라나 북극곰과 같은 동물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생존에 관한 우리 시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가 제시한 탄소배출량 총량에 도달할 때까지 지금의 추세로는 8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레타 툰베리의 2019년 프랑스 의회에서의 연설을 인용하며 “2021년 기준으론 이제 탄소배출량 총량에 이르기까지 6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해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멈췄는데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유엔환경계획(UNEP)이 요구한 7.2%에 못 미치는 7% 감소했다. 그런데도 영세 자영업자, 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작년보다 더 강한 강도로 탄소배출을 줄인다면 더 비극적인 일들을 견뎌내야 할 것”이라며 “민주적이고 계획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인식은 탄소배출에 더 책임이 있는 고소득층, 자산가들이 탄소 감축의 비용과 고통도 더 짊어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정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느냐다. 한재각 활동가는 “지난해 9월 국회는 기후변화 비상선언이란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올해 2월엔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불이 나서 ‘불이야’라고 외쳤는데, 마치 그렇게 외친 것을 잊은 듯한 모습”이라며 “지금의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정치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치의 역할 확대와 관련해 김병권 소장은 “내년에 두 개의 큰 선거(대통령선거, 지방선거)가 있다. 기후위기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는 ‘기후투표’가 기후위기와 관련된 중요한 시민참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협동조합을 통한 ‘에너지 전환 모델’ 제시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창수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은 지역에서 주민 주도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참여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그가 이끄는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2012년에 출범해 9년간 발전소를 늘려가며 현재 25개의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이 출자한 자금으로 체육관 옥상, 생활폐기물 처리장, 물탱크 위 등의 유휴공간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이익을 배당하는 식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금까지 시민들이 37억원 이상을 출자하고, 매년 출자금의 5% 정도를 배당으로 돌려줬다. 협동조합 차원에서 태양광 기능사를 양성하며 관련 전문가들도 배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보경 경기도사회적경제센터장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사회적 경제 부문의 역할들을 제시했다.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기관들의 활동으로 지역 주민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체험하며 인식을 제고할 수 있고, 대기업들의 생산과정을 모니터링하며 그들이 기후위기에 걸맞은 생산을 하는지를 살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처럼 소비자들이 모여 생산자로 전환하는 것도 사회적 경제 부문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문 센터장은 밝혔다.

마지막 토론자였던 이은호 청년기후긴급행동의 활동가도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미적지근한 기존 후보들을 비판하며 ‘나처럼 멸종하고 싶지 않다면 기후위기 문제에 하루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호 0번 김공룡 마스코트 캠페인’을 벌인 단체다. 이은호 활동가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수도꼭지 잠그기, 쓰레기 줍기 등 개인의 실천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가 개인의 좋은 행동을 유도하는 윤리적 소비주의에 머물지 않고, 국내에 석탄발전소를 짓고 해외에 석탄발전소 공사를 지원하는 정부의 행태 등 보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윤형중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philyoon23@gmail.com

출처: 한겨레 (hani.co.kr) 

원문: 기후위기 대응, 시민이 주도해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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